에필로그(Epilogue) (结尾)-김소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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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ti:에필로그(Epilogue) (结尾)]
[ar:김소연]
[al:오늘의 난 미지근하게 축제 (Live)(Friendhood) (今天的我消极的庆典)]
[by: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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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00:00.39]에필로그(Epilogue) (结尾) - 김소연
[00:00.80]어젯밤엔 커튼을 닫고 불을 끄고
[00:03.35]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웠을 때에
[00:05.49]
[00:06.49]오늘 하루 참 좋았다
[00:08.08]
[00:08.84]하고 빙그레 웃으며 잠이 들었다
[00:11.16]
[00:12.38]깊고 달게 잠이 들었다
[00:14.44]
[00:15.34]두번째 태풍이 지나가고
[00:17.93]푸른 하늘 속에 떠 있는 하얀 구름이
[00:20.64]
[00:21.31]오늘 하루도 잘 지내라는듯이
[00:23.83]떠있는 아침
[00:26.00]나라는 사람은 어떻게
[00:28.17]하루를 보냈을 때에
[00:29.81]하루가 좋았다는 느낌이 드는지를
[00:32.94]헤아려보며 아침 커피를 마셨다
[00:36.24]
[00:37.59]잘 지낸 건 어제지만 몸이
[00:40.41]개운하고 머리가 맑은 건 오늘이다
[00:43.53]
[00:44.49]책을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한 채로
[00:47.51]
[00:48.04]부산하게 지낸 하루는 못마땅하다
[00:50.96]
[00:52.19]잠깐의 짬으로라도
[00:53.54]두어 페이지라도
[00:55.44]
[00:56.08]책을 읽고 머리에 맴도는
[00:58.67]질 좋은 문장을 마주친 하루가 좋다
[01:01.68]
[01:02.22]어제는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철학자
[01:05.31]김진영 선생의 산문집
[01:07.65]아침의 피아노를 펼쳐보았다
[01:09.75]
[01:10.59]7쪽까지 읽고 잠시 책을 덮었다
[01:14.35]
[01:15.46]내가 존경했던 이들의 생몰 기록을
[01:19.11]들추어 본다
[01:20.18]
[01:20.79]그들이 거의 모두 지금 나만큼
[01:23.87]살고 생을 마감했다는
[01:26.06]사실을 발견한다
[01:27.66]
[01:28.74]내 생각이 맞았다
[01:30.58]나는 살 만큼 생을 누린 것이다
[01:34.37]
[01:34.90]이 문장 속에 사용된 단어
[01:39.61]하나하나가 귀하게 나에게 박혀왔다
[01:43.10]
[01:44.70]존경했던이라는 말과
[01:47.20]
[01:48.04]존경해온이라는 말의
[01:50.84]차이에 대해서 생각했다
[01:53.40]
[01:54.74]누군가가 다시 찾은 존경심에 대하여
[01:57.83]날이 개인 오늘 아침의 하늘처럼
[02:01.48]
[02:02.14]새삼스레 무언가가 맑게
[02:04.61]복원되는 순간에 대하여
[02:06.54]
[02:08.31]이렇게 상기하게 되는
[02:10.14]일들은 되찾는 것과 다름없다
[02:13.45]
[02:14.73]저자가 되찾았을 존경심이
[02:17.17]
[02:17.75]비 온 끝의 무지개처럼
[02:20.34]담대히 한쪽 하늘에
[02:22.72]걸려 있는 것만 같았다
[02:24.71]
[02:26.08]그리고 마지막 단어
[02:27.68]
[02:28.24]누린 것이다라는 말이
[02:30.64]
[02:31.64]가장 짙게 감촉되었다
[02:33.72]
[02:34.81]나는 살 만큼 생을 누린 것이다
[02:38.19]
[02:39.35]누렸다는 표현을 과연
[02:42.42]나도 쓸 수 있을지 가늠해본다
[02:44.58]
[02:45.65]아직은 못 그럴 것 같았다
[02:47.99]
[02:49.32]나에겐 생을 버텼다
[02:51.67]
[02:52.22]혹은 생을 견뎠다 같은 좀더
[02:55.70]아픈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
[02:59.29]
[03:01.65]나는 육체를 많이 사용한
[03:03.05]날을 좋아한다
[03:04.69]세탁기에 집어넣을 수 없는
[03:06.76]빨래를 쪼그리고 앉아 팔을 써서
[03:09.74]벅벅 비벼본 날도 좋고 몸이
[03:13.16]노곤노곤해질 만큼
[03:15.13]오래 걸은 날도 좋다
[03:17.10]땀을 뚝뚝 흘리며
[03:20.13]베란다의 묵은때를
[03:21.36]말끔히 씻어내린
[03:23.17]날도 좋고 공 하나를
[03:25.36]사이에 두고 누군가와 운동장을
[03:28.68]가로지르며 운동을 하게 되는
[03:31.04]날도 좋다
[03:31.46]
[03:33.26]그럴 때는 햇볕 아래여야 한다
[03:35.26]
[03:36.31]그늘 아래 드는 순간이
[03:37.83]
[03:38.37]소중해질 만큼의 땡볕 아래면 더 좋다
[03:43.11]
[03:43.93]육체를 사용할 때에는 상념이나
[03:47.05]걱정 같은 것을
[03:48.58]동반하지 않기 때문에 좋다
[03:50.62]
[03:51.94]육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에만
[03:54.74]집중할 수 있는 무념이 좋다
[03:56.68]
[03:57.74]무심하기가 너무도 어려운 날이면
[04:00.97]
[04:01.55]으레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
[04:04.21]오늘 시간 괜찮으면
[04:06.03]같이 배드민턴 칠래
[04:07.89]
[04:08.58]하고 물어보곤 한다
[04:10.40]
[04:11.50]무심하기 위해 민첩한 방향전환을
[04:15.03]
[04:16.36]꾀하는 실천력을 나는 좋아한다
[04:18.28]
[04:18.90]파 한 단이나 양파 한 망을사와서
[04:22.17]식재료를 손질하고 소분해서
[04:24.95]잘 보관해두는 일을 좋아한다
[04:27.17]
[04:27.92]내일과 모레
[04:29.40]
[04:29.90]앞으로의 날들을 위해 작은 노동을
[04:33.25]미리 해두는 기쁨이 있어서 좋아한다
[04:35.32]
[04:36.45]한참 잊고 지낸 이에게
[04:39.17]안부를 묻기 위해
[04:40.63]전화를 걸어보는 일을 좋아한다
[04:42.35]
[04:43.44]그냥 걸었어
[04:45.51]라고 말하면서 이런저런
[04:48.25]안부를 묻고 걱정을 나누고
[04:50.60]응원을 보내며 저쪽의 목소리와
[04:54.03]호응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
[04:55.84]
[04:57.66]미뤄두었던 일 하나를 소박하게
[05:00.36]해치우는 것도 좋아한다
[05:01.66]
[05:03.03]창틀의 먼지와
[05:04.15]유리창의 얼룩을 지운다거나
[05:07.23]창고정리를 하면서
[05:09.23]안 쓰는 물건을 버리는 걸 좋아한다
[05:11.60]
[05:13.08]어제는 유효기간이 지난 알약과 연고
[05:16.53]그리고 모아둔 몇 개의 아이스팩
[05:18.74]
[05:19.30]폐건전지와 고장난 소형가전
[05:22.66]한 개를 들고 주민센터에 갔다
[05:26.70]주민센터 입구에
[05:27.68]마련된 분리수거함에
[05:29.34]버릴 것을 버리고 돌아서면
[05:32.30]돌아오는 길의 발걸음은
[05:34.83]한껏 상쾌하다
[05:36.88]
[05:38.20]어제는 해가 질 때까지
[05:39.97]이 좋아하는 일들을
[05:41.59]차례차례 행하면서 지냈다
[05:44.14]
[05:44.85]잠이 들 때까지 읽고 쓰는 일을 했다
[05:48.08]
[05:48.91]오늘도 어제처럼
[05:50.27]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
[05:51.91]
[05:52.95]생을 누렸다라는 표현이 내 자신을
[05:57.08]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말이
[06:00.11]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